유럽

이태리 폼페이 - 화산의 도시

마고패밀리(장독) 2024. 8. 25.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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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륙()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베수비오 화산의 남동쪽, 사르누스강() 하구에 있는 항구도시였다. 비옥한 캄파니아 평야의 관문에 해당하여 농업 ·상업 중심지로 번창하였으며, 제정()로마 초기에는 곳곳에 로마 귀족들의 별장들이 들어선 피서 ·피한의 휴양지로서 성황을 이루었다. 폼페이의 기원은 매우 오래 되었으며, 처음에는 오스키인()들이 취락을 이루고 살았다. BC 470∼BC 424년경에는 에트루리아인()이 차지하였고, 그 뒤 BC 80년까지는 삼니트인들이 도시를 지배하였다.

그동안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시()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특히 BC 3세기 중반부터는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사실이 발굴 결과 밝혀지고 있다. 그후 동맹시전쟁(, BC 91∼BC 88) 때에는 동맹시 쪽에 가담하였으므로 BC 89년에 로마의 장군 술라의 공격에 굴복,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부터 급격히 로마화()하였다.

제정로마 초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폼페이는 고대도시로서는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인구는 2만∼5만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인구가 일정하지 않은 것은 인구의 계절적 변동폭이 크기 때문이었다. 폼페이에서는 대폭발이 있기 이전인 63년 2월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입었으며, 그 뒤 다시 복구되어 전보다 훨씬 훌륭한 도시로 재건되었으나, 79년 8월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2∼3m 두께의 화산력()과 화산재가 시가지를 덮어버렸다.

당시의 분화상황은 소()플리니우스가 실감있게 전해주고 있으며, 대부분의 주민은 참화를 면했으나 2,000여 명이 사망하였다. 분화가 멎은 뒤 재보()를 발굴한 사람도 더러 있었으나, 15세기까지 폼페이의 존재는 잊혀졌다. 16세기 말부터 소규모 발굴이 시작되고 1748년부터 본격 발굴에 착수하여 꾸준히 발굴이 계속되었으며, 옛 시가의 거의 절반 정도가 발굴되었다.

벽화를 포함한 초기의 발굴품은 대부분 나폴리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가급적 현지에서 복원한다는 방침이다. 전성기에 갑자기 멸망하였으므로, 당시 로마 도시의 일상생활을 자세히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들이 발굴되었으며, 그것들은 상당히 쾌락적이고 현세 향락적인 도시 생활을 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폼페이의 많은 벽화를 통하여 유품이 적은 헬레니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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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폼페이 도시는 화산으로 인해 멸망한 도시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더더군다나 유적지를 빼고는 달리 할 만한게 없다...

 

이 곳을 보면서 당시 살았던 이들의 집

 

그리고 벽화 등이 과거의 아름다움을 말해 주는 것이리라...

 

 

그 오래전 옛날

 

많은이들이 모여서 가수의 열창을 들었을 대극장입니다...

 

옆에서 설명하던 영어가이드가 하울링을 느껴보라며 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더군여...

 

 

모두 떠나고 나혼자 나만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울링이 나는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고대에 이곳에 묻혔을 영혼들을 향한 위로의 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영어가이드를 따라 다니게 되엇는 데여

 

이 분의 설명을 빌자면

 

오래전에 사용했던 화덕의 갯수에 따라 부유한지 가난한지를 알수 있다는 군여...

 

 

화덕의 갯수가 많을 수록 부자였다는 데

 

모 암튼 거주민들의 삶을 잠시 엿볼 수 있어 감사했었습니다...

 

 

 

아직도 이곳은 보수중입니다...

 

무너져 가는 유적군들과 아직도 발굴해야 하는 것이 남아 있다는 애기죠...

 

이들의 노력이 폼페이를 찾아 오게 만드는 힘이죠...

 

 

벽면을 가득 채운 까사 디 멜레 아그로

 

이 집을 들어 가면서 남의 집을 엿 본다는 묘한 쾌감으로 방문 한 곳이다 ㅎㅎ

 

 

주피터 신전

 

폼페이 북쪽에 있는 주피터 신전

 

이 신전은 주신은 주피터와 유노, 미네르바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만든 신전으로

 

앞쪽으로는 포로와 아폴로 신전을 두고 있다...

 

 

바실리카

 

고대 건축 양식인 바실리카 양식으로 초기에는 시장으로

 

말기에는 사법기관으로 쓰였다고 한다...

 

 

 

아폴로 신전

 

바실리카 맞은편에 있는 신전.

주위는 48개의 원기둥과 벽으로, 중앙에 있는 본전은 40개의 코린트식 원기둥으로 에워싸여 있다.

봉납자의 이름이 새겨진 도기와 아폴로의 청동상, 아폴로의 누이 디아나상이 출토되었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진짜는 나폴리의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현재는 아폴로 신전 앞의 재단과 기둥만이 남아 있어서 아쉬웠다.

 

쥬피터 신전 옆에 있는 발굴 된 유물들...

 

 

사실 폼페이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많은 생각들을 했다...

 

하루의 절반은 쥬피터 신전에 앉아 이런 저런 생각 정리도 하고 사람들의 모습도 본의아니게 지켜 본다...

 

우리나라 단체 관광객도

 

그리고 학생들도 있었다...

 

우리네 관광객들은 많은 걸 보고 또 많은 걸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 나라 투어팀은 사진찍고 이동하기에 급급했다...

그냥 좀 여유롭게 바라 봐도 될텐데...

 

왜 점만 찍으려 할까...

거기에다가 가이드들은 안내한 걸로 족한 듯 보인다...

 

이동하기에 바쁘다...

 

조금은 느린 그리고 조금은 여유있는 여행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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